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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3부] 또 다른 보혜사 성령! [요14:16-18]
설교자정은주목사 2018-11-04 조회수49 500k mp3 word 요약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오늘의 고난을 인생 작품으로 만듭시다.’
[서론] 요즘 우리가 매 주일 요한복음을 살펴보고 있는데 요한복음 14장 말씀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대전제를 바탕으로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요한복음 16장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떠나신다고 하니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 곁을 따라다녔던 것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행하셨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것만 행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예수님만 처리하려고 했지 제자들은 그대로 내버려 둘 정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제자들의 당시 심정을 잘 나타내는 단어가 있는데 18절에 나오는 고아와 같은 심정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아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것입니다. 제자들의 심정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보혜사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이제 ‘예수님이 떠나고 나면 고아와 같이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새 힘을 주신 것’입니다.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서 ‘CVDIP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CVDIP 인생은 언약적 비전을 가슴에 담고 꿈을 꾸며 그것이 현실화되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인생작품을 만드는 자리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작품을 만드는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배경이 바로 보혜사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역사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고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응답 속으로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함께하시는 평안의 영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4:1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결정적 이유는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이고 ‘파라’는 곁으로 ‘클레토스’는 부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保惠師(보혜사)라는 한자의 뜻을 풀어보면 ‘우리를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helper(헬퍼)의 역할, 위로해 주시는 Comforter(컴포터)의 역할, 권면해주신 Counseller(카운슬러)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보혜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한 가지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이라는 말은 성령 위에 보혜사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도 보혜사의 역할을 하셨고, 그뿐만 아니라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보혜사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일2:1을 보면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언자는 원문에는 보혜사와 같은 파라클레토스로 되어있습니다. 롬8:34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8:26에는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땅에 각각 우리를 돕는 보혜사를 가진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고 있는 영적 신분의 본질적 바탕에는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이것만큼 큰 배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의 가장 큰 특징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오셨다가 떠나기도 했지만,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이후에는 결코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그 순간 내주하시면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본문 17절에도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문제와 사건이 발생하면 염려와 근심 속에 불안하고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성령이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영적 사실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인 어니 젤린스키(Ernie Zelinski)가 근심에 관한 이런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것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22%는 안 해도 될 사소한 것이다. 또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고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심 걱정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염려, 근심 속에서 세월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수염을 가슴까지 길게 기른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손자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세요? 밖에 꺼내놓고 주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뜻밖의 질문을 받은 노인은 “글쎄 …”라고 하면서 한참을 생각해봐도 그동안 어떻게 잤는지 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꺼내놓고 잔 것도 같고 속에 넣고 잔 것도 같고 그래서 그날 밤에 자보고 그다음 날 대답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노인은 자리에 누워 수염을 이불 밖으로 꺼내놓았는데 어째 좀 허전한 것이 이전에는 꼭 이불 속에 넣고 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잠을 청하는데 이번에는 약간 답답한 것이 아무래도 전에는 밖으로 꺼내놓고 잔 것 같아 다시 이불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어색했습니다. 이렇게 노인은 밤새 수염을 이불 속에 넣었다가 꺼냈다가 하느라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염려와 근심이 이렇다는 말입니다. ‘사단이 염려와 근심으로, 여러분 생각을 사로잡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모든 진을 다 빼고 허송세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성령의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 평안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이십니까? 롬8:26에 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보호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새 힘을 주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참된 소망을 주시는 보혜사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참 평안, 참 감사, 참 기쁨, 참 행복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증언하시는 진리의 영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진리의 영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특별히 보혜사 성령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역을 감당하신다는 사실을 요15:26-27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또 우리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27절의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원어에는 ‘너희도 역시 증언하여야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증언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필수 미션입니다. 과연 내가 어떻게 복음을 증거 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해 또 염려 근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도 답을 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이니 현장에 가서 말할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2장에 이후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사 이들의 영적 눈이 열렸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마음에 의문사로 남아있던 것이 감탄사로 바뀌었습니다. 막연했던 믿음이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말씀과 이적과 기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식한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하자 구약의 시편과 요엘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한 이유는 성령이 임하셔서 깨닫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이 현장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 훈련받았던 것들, 강단 메시지를 통해 은혜받았던 부분들을 모두 다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말을 해놓고도 과연 이 말을 내가 한 것이 맞는가 할 정도로 시간표에 정확히 맞는 메시지를 하는 여러분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반기 전도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부터 여러분이 작성한 전도대상자를 놓고 매일 밤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전도대상자를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던 견고한 흑암 세력의 진을 파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흑암 세력을 사전 결박하고 현장에서 열매를 거두는 것이 바로 전도캠프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사는데 중요한 것이 존재감입니다. 무엇보다도 ‘증언하는 존재감을 여러분이 실제로 맛보고 현장에서 드러내기 바랍니다.’ 이번 하반기 전도운동과 237 나라 복음화를 위한 다민족 초청축제가 이런 응답의 시간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존 번연(John Bunyan)이 쓴『천로역정』을 읽어보면 주인공 크리스천이 길을 잘못 들어서 의심의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안에서 체포되어 절망의 감옥에 갇힌 크리스천은 자신의 처지가 아무런 미래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조금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면 자신의 삶을 끝내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자살 충동에 빠지게 되는데, 다행히 크리스천 옆에 그곳까지 동행했던 소망씨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소망씨가 옆에서 크리스천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자살을 생각하기 전에 지금까지 삶 가운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출해주셨던 하나님의 도움을 생각해보라. 그분이 여기서도 너를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예비해 놓으시지 않았겠는가?” 이런 소망씨의 격려를 받는 순간 갑자기 크리스천은 자기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품에서 말씀인 두루마리를 꺼내서 읽다가 두루마리의 봉인 밑에 있는 약속이라는 열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의 열쇠로 잠겨 있던 절망의 감옥 문을 열고 무사히 빠져나오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전해 줍니다. 소망씨는 어떤 면에서 보면 성령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모든 것이 차단당한 듯한 절망의 자리에 처하게 될 때, 그때에도 ‘성령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모든 문제와 사건에서 완전히 해방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삶의 현장에서 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생명 살리는 영적 소망씨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흑암이 꺾이고 참 소망의 빛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한 생명의 회복이 일어나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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