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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2부] 내 인생의 기쁨! [요3:22-30]
설교자정은주목사 2018-06-10 조회수224 500k mp3 word 요약
3: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침례를 베푸시더라

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침례를 받더라

3: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3: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3: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침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3: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3: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예수님을 흥하게 합시다.’
[서론] 지난 5월 한 달간 집중전도 시간을 통해서 많은 새가족들이 우리 교회에 초청되었습니다. 5월 한 달 동안 새가족 902명이 초청되었고 이 가운데 560명이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까지 통계를 보면 올해 1,437명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으며 그중에서 1,010명이 새가족 등록을 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가장 기쁨을 느끼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불신자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생명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고 또 하나는, 이렇게 등록한 새가족이 교회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서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목회자의 가장 큰 기쁨은 ‘생명이 살아나고 생명이 자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열흘 동안 미국과 캐나다에서 진행된 전도집회 및 미주대학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이런 세계 선교 현장에 가서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열매가 나오고 있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기쁨으로 사역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어떤 부분에서 기쁨을 맛보고 계십니까? 새집을 장만하고, 승진하고, 중요한 거래가 성사되고, 학교 성적이 오르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는 것과 같은 일들이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이런 기쁨은 순간적인 기쁨에 불과합니다. 잠깐 기쁨을 주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면 마치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우리 삶에 지속적인 만족과 기쁨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습니다. 어느 날 폭풍우나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찬란한 햇빛이 들기도 합니다. 또 어느 날은 순풍에 돛단 듯이 가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해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비결을 오늘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특별히 5월 한 달간 집중전도를 통해서 등록한 새가족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인생의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삶의 현실 가운데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와 사건들을 다 뛰어넘어 견고한 응답을 맛보는 주역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3:22-23)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의 사역과 세례 요한의 사역이 비교되어 있습니다. 두 사역의 내용을 보면 회개의 강조와 함께 세례를 베푸는 점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는 시점이었고, 세례 요한은 이미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 위치가 확실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세례 요한의 외침에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위치였는데 예수님께서 등장하신 이후 세례 요한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세례 요한만을 바라보았던 군중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게 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뜸해지기 시작했지만, 예수님 주변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3:25-26) 세례 요한의 제자와 유대인 사이에 정결 예식에 대하여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논쟁 가운데 세례 요한의 제자가 크게 마음을 상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논쟁하던 유대인이 세례 요한의 제자에게 “너희 선생보다 예수가 훨씬 더 인기가 있다. 봐라,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가지 않느냐.”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제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사람들이 이제는 다 예수님에게로 갑니다.”라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에게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요즘 지방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인데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라는 세계적 이슈 앞에서 그 분위기가 예년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관심을 가지고 지역을 위해서 사실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꾼들에게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가장 긴장해서 보는 것이 표심이 어디로 흐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 후보에게 표심이 많이 몰릴 것 같으면 각종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해서 상대를 비난합니다. 선거 전에는 그렇게 정책 대결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모든 목표가 오직 표에 달려 있습니다. 표만 받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본문의 제자들도 세례 요한에게 무슨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해서라도 자신들을 떠나고 있는 민심을 돌이켜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자들의 선동에 세례 요한은 놀라운 답을 했습니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요3:27-28) 세례 요한의 답은 지금 민심을 다시 자신에게 돌이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인 예수님에게 더 집중적으로 몰아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표를 받아서는 안 되고, 자신을 지지하는 표도 전부 다 예수님께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들도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역하면서 자기가 드러나는 것에서 기쁨을 맛보려는 것에 정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이 부분을 가장 잘 충동질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충동질했던 그 수법을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창세기 3장 나 중심의 옛 습관, 옛 체질에 그대로 빠져서 여기에 당하고 있지만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인생의 기쁨’을 두었습니다. 행1:1의 오직 그리스도로 답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요3:29) 저는 성경 속에서 행1:1절 오직 그리스도로 답이 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세례 요한을 꼽습니다. 그만큼 놀라운 고백과 행동을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무리가 자기 대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며 오히려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신랑의 들러리가 신랑의 기쁨을 오히려 더 기뻐하는 것처럼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유대 관습에는 신랑 친구는 낮에 찾아오는 결혼식 하객들은 맞이해서 대접합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신랑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도 신랑 친구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혼식을 마치면 그 친구의 역할은 끝납니다. 신랑이 나타난 자리에는 아무도 들러리인 친구를 주목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랑 친구는 신랑 때문에 기뻐한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바로 이런 기쁨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세례 요한이 가졌던 그 기쁨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그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바로 ‘영적 큰 자’입니다. 느8:10을 보면 느헤미야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붙잡으시고 날마다 생명력 넘치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 기쁨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30)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다는 고백에 이어 자기 삶의 모습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한 말씀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씀의 원문에는 단호한 의지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예수는 흥하여야 하고 반드시 나는 쇠하여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 것이고, 거기에 자기 ‘인생 최고의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36절을 보면 흥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잘 밝히고 있습니다. 31절에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셨고 만물 위에 계시므로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 된 존재로 태어나는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분은 죄인 된 인간이어서는 안 되고, 또 모든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또 34-35절에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은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무엇보다 36절을 보면 ‘예수님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놀라운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의 불신자들은 새롭게 진노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노 속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신분이 마귀의 자식이므로 그대로 놔두면 영원한 멸망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그렇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친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를 진정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현장에 흑암이 꺾이고, 귀신이 물러가고, 병자가 치유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생명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까? 그분만이 영원한 저주 가운데 빠진 인간을 구원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만 흥하게 하는 생명 살리는 기쁨을 체험하는 것에 항상 영적인 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 생명 살리는 기쁨을 맛본 분들은 계속해서 현장에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숨은 전도자들에 관해 영상을 만들어서 성도님들에게 보여드리라고 해서 예배 전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숨은 전도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의 삶 속에 기쁨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기에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흥하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평안과 기쁨이 샘솟게 되어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 기쁨을 날마다 체험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산증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미국을 여행하던 여행자가 마침 주일이 되어서 예배를 드리려고 교통경찰에게 ‘좋은 교회’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 여행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통경찰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가까운 교회도 있는데 저렇게 먼 곳에 있는 교회를 가르쳐 줍니까?” 그러자 그 경찰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제가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저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장 기쁘고 즐겁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배드리고 나가는 예원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의 모습이 이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영적인 기쁨과 그 즐거움을 날마다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살전 5:16-18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시37:4에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더 사랑하고 소통하면 할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능히 응답하시는 분이 바로 성삼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 예수님을 흥하게 하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생명 회복의 증인 된 삶’ 속으로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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