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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3부] 복음 중의 복음! [요1:9-13]
설교자정은주목사 2018-03-11 조회수402 500k mp3 word 요약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갇힌 자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합시다.’
[서론] 20세기를 대표하는 목회자이자 복음 전도자였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미국 1918. 11. 7.~ 2018. 2. 21.) 목사가 얼마 전에 99세를 일기로 소천하였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세기 후반 복음주의 운동에 앞장섰고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방문하여 한국교회 부흥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7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대회’에 하루에 110만 명이 모였었는데, 이는 세계 기독교 집회 사상 단일 행사에 최고 인원이 모인 기록이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살아생전 전 세계 185개국 2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TV와 라디오, 인터넷 등과 같은 미디어 매체를 포함하면 그가 복음을 전한 사람이 22억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너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하늘나라로 거주지 주소를 바꾸는 것뿐이니 슬퍼하지 마라.” 그의 손자도 미국 크리스찬투데이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오늘은 할아버지가 이 땅에서 진짜 살아있는 땅으로 이사하신 날이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영생의 참 소망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의 마지막 유고작인 『내 소망은 구원입니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참 소망을 강조한 책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조를 받게 되면, 빚진 마음을 갖게 되는데, 빌리 그레이엄은 자신의 영혼을 구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일생을 복음 전파에 바치게 되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요한복음을 보는데 요한복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참 소망에 대해서 아주 사실적으로 기록한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떻게 구원의 참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그 답을 핵심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답이 바로 요1:12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복음의 문자적 의미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지만,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소식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음은 영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구원에 대한 감사의식이 있을 때 그 삶은 생동감이 넘치고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성장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이런 ‘복음 중의 복음’이 사실적으로 각인, 뿌리, 체질화되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고 견고한 응답의 주역으로 당당히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참 빛이신 예수님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1:9-11)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아주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이 참 빛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빛은 빛인데 참 빛입니다. 여기서 참이라는 의미는 원어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짓에 반대되는 참을 의미합니다. 옳고 그름, 거짓과 진실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참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참 빛이라고 할 때의 참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용어는 ‘불완전에 대한 완전함을 의미하는 참’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참 빛이기 때문에 인생을 바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다른 빛은 불완전하므로 인생을 바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2:8에 이러한 불완전한 빛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불완전한 빛을 따르다가 결국, 그 삶이 흑암 세력이 뿌려놓은 헛된 속임수에 빠져 살게 되는 것입니다. 12가지 영적 문제 속에 빠져 유리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한 멸망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본문 9절에는 예수님께서 참 빛으로 오셨는데 그 빛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독선주의, 편협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사도 요한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만 비추시는 참 빛이 아니라, 헬라인이나 모든 민족에 비추시는 참 빛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빈부귀천,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다 비추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현장에 사는 불신영혼들은 안타깝게도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영적 무지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구원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야 할 미션’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자기가 사는 필라델피아 시민들에게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것이 시민들을 위한 선한 일일까?’를 고민하던 그가 한 가지 지혜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자기 집 앞에 작은 선반을 하나 만들고 그 위에 아름답고 예쁜 등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 등에 불을 켜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등불은 집 안에서 켜는 것인데 그렇게 집 밖에 놓아두는 것은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등불을 켜두니까 밤에 그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기들도 집 밖에 등불을 켜두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밤에도 길거리가 환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보편화되어있는 가로등이 이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구원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혹여 그 빛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그 구원의 참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등불을 하나씩 켜기 시작한다면 흑암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삶 속에 새로운 소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어둠에 사로잡힌 세상을 밝히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구원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드러내며 가는 곳마다 참 소망의 삶을 회복하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이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최고의 소망을 주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구원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영접하는 것과 그 이름을 믿는 것을 같은 의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 즉,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순간 그 삶은 180도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분적인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마귀의 자식으로 세상 풍속에 따라 사는 삶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아주 독특한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표현해도 의미가 통하는데 굳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가지게 되는 놀라운 권세가 있는데, 그 권세를 사실적으로 누리며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문제를 상의하며, 간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히4:16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도 응답의 권세’를 반드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는 ‘세상을 이기는 권세’입니다. 요일5:4-5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흑암 저주 세력을 꺾을 권세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천사의 도움을 받을 권세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라고 히1:14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 영생이 보장되고, 천국시민권을 받았기 때문에 지옥 갈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분명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여러 가지로 비유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신앙생활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 문제지를 보면 앞에는 문제가 있고 뒤에는 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뒤쪽의 정답을 먼저 본다고 시험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를 스스로 풀어냈을 때 비로소 실력이 향상되고, 드디어 자기 답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은 권세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정답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삶에 중요한 것은 아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A가 무엇입니까? ‘Application, 바로 적용’입니다. 삶의 모든 상황 가운데 여러분에게 주어진 놀라운 ‘권세적 축복’을 사실적으로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권세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체험하며 날마다 견고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3) 우리가 결론적으로 붙잡을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복음 중의 복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선민의식에 대한 반박의 의미로 본문의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유대인의 혈통으로 태어났다고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욕정이나 사람의 뜻, 다시 말해 사람의 어떤 욕망이나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엡2:8-9에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런 축복의 반열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매 순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식이 여러분 삶 속에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은 정반대로 살아갑니다. “항상 비판한다. 쉬지 않고 원망한다. 범사에 불평한다.” 이런 삶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마지막 전도 집회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목사님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분이 내게 주신 말씀에 신실하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는 그분의 부르심에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주어진 궁극적 권세는 바로 세계복음화할 권세’라는 것을 사실적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518장에도 있듯이 ‘예수 구원하신다’라는 ‘복음 중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며, 진정한 믿음의 최후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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