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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성경적 기도! [눅18:1-14]
설교자정은주목사 2017-10-08 조회수281 50k 500k mp3 word 요약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8: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18: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18: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기도는 영적 과학입니다!”
[서론] 추석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수년 동안 국외 집회가 명절에 있어서 집에 없었는데, 이번 명절에는 오랜만에 집사람과 한 주 휴가를 보냈습니다. 지난 주간 제가 설교를 통해 우상숭배, 제사 문제에 다니엘처럼 ‘믿음의 정면 돌파’하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도전해 보라고 말씀드렸는데, 영적 지각 변동을 체험하셨습니까? 믿음의 결단을 하고 행하신 분들은 분명한 ‘영적 실상’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막혔던 모든 담들이 무너지는 시간표였다면 또 어떤 분들에게는 여전히 견고한 벽이라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적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낙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행한 모든 것은 결코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는 것은 속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를 들어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를 공격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바로 낙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낙심 전략에 속지 말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할 때 낙심하는 이유는 자기가 간구한 그대로, 자기가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기복적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복적 기도는 세상의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종교와 차원이 다른 기도’, ‘성경적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영적 이정표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도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된 방법을 가지고 계속 구한다면, 오히려 그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이 성령 인도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를 정확히 이해하며 최고의 응답을 맛보는 ‘성경적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간절한 믿음의 기도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눅18:1)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과 억울한 과부의 비유를 통해 이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불쌍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갔지만, 재판관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재판관이 아주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자신의 유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므로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끈질기게 그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이 재판관은 자신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과부의 원한을 풀어 준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이 비유에 대해 이런 해석을 합니다. 가난한 과부는 성도들이고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많이 잘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을 마치 불의한 재판관과 같이 생각하여서 우리가 귀찮게 졸라대고 들어줄 때까지 매달려야 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면 기도가 응답된다고 오해합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해야 응답이 임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기도굴에서 기도하고 밤새 철야기도를 해야만 들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만큼 인본주의가 없습니다. 기도 응답의 조건을 전부 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기준을 다 채웠는데 왜 응답이 없느냐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스스로 낙심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핵심은 본문 7-8절에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7-8)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는 분’이시고 거기에 대해 ‘가장 선한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7:9-11을 보면 이 사실을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과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물며’입니다. 이 표현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기도를 듣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지 않겠느냐”, “ 하물며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최고의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창조주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동시에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 대속의 짐을 지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이끄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이 읽으셔야 합니다.

작자 미상의 한 기도문이 있는데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나는 건강을 구했지만 주님은 시련을 통해 나를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나는 지혜를 구했지만 주님은 나에게 문제를 주셔서 그것을 해결하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번영을 구했지만 주님은 나에게 일하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용기를 구했지만 주님은 어려움을 주셔서 그것을 이기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사랑을 구했지만 주님은 문제 있는 사람들을 보내시어 그들을 돕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호의를 구했지만 주님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다가 결코 낙심하지 않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기도하다가 낙심하는 이유가 바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에게 ‘최고 합당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통해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진실한 언약 기도
오늘 본문 9-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를 들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의 자세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자기가 의인이라고 믿고 남을 멸시하는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죄인이라고 멸시받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는 거룩하기 때문에 다른 죄인과 함께 서서 기도할 수 없다며 따로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은 온통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함께 성전에 온 세리와 비교하여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세리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절감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런 두 상황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바리새인과 같이 남에게 보이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의 중심을 드려 진실하게 간구하는 세리의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145:18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죄를 지었다면 그 지은 대로, 실수했다면 실수한 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면 다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앞에서 해결되지 않을 어떤 문제도, 용서받지 못할 어떤 죄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 쓰여질지에 관심을 두고 계신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비전 있는 기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맞춰 쓰임받을 수 있는 언약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매번 예배를 드릴 때마다 언약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원단 메시지를 선포할 때 나누어드린 ‘2017년 언약 기도문’, ‘2017년 비전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017년 한 해 동안 응답받을 기도 제목이 거기에 적혀 있고 매 주일 예배를 통해 주어지는 ‘언약 기도문’은 그 주간 응답받을 기도 제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1절에 우리가 때때로 기도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한 마디로 ‘영적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삼상12:23에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살전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매 순간 임마누엘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을 정시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잡고 무시로 내 삶 속에 적용할 때 나의 수준을 뛰어넘는 ‘25시의 응답’, ‘재창조의 응답’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언약 기도의 능력을 힘입어 현장 변화의 주역으로 모두 다 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나 기도함으로써 새 힘을 얻고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뉴턴은 기도에 대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과학자로서 늘 천체 망원경을 통해서 하늘의 별들을 관찰합니다. 그러나 나는 자주 골방에 들어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그 어떤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는 내 영혼의 망원경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자의 고백입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바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권능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렘33:2-3에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의 기도’, ‘하나님의 뜻과 방향을 맞추는 진실한 언약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성경적 기도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는 일을 체험하며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기도의 참 용사’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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