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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하나님의 기대치! [눅13:1-9]
설교자정은주목사 2017-08-13 조회수159 50k 500k mp3 word 요약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13: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3: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13: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13: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13: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나, 나의 것, 나의 현장을 회복합시다!”
[서론] 오늘 제목이 ‘하나님의 기대치’인데 기대치(期待値)라는 말은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던 목표의 정도’를 비유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는 성적의 기대치가 있을 것이고, 사업가나 직장인들은 실적에 대한 기대치가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도 우리를 향한 기대치가 있습니다. 엡1:4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각자를 향한 기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이런 하나님의 기대치를 바라보고 믿음의 도전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기대치를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모습은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기대치가 높으면 그만큼 그 삶은 생명력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기대치가 낮으면 그냥 대충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매주 통과의례 식으로 교회에 오고, 명목상 크리스천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이 제일 좋아하고 반기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형식적 종교 생활에 빠진 분이 단 한 분도 없길 바랍니다. 시81:10에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치를 잘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입을 크게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시시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존귀한 존재, 영적 VVIP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주시는 영적 진리를 붙잡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가는 증거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올바른 영적 해석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1-3)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2장의 말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후반부에 당시 유대인들, 특히 영적 지도자라고 자부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자연현상을 통해 천지의 기상은 잘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무지하고 무감각하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에 빨리 하나님과 화해해야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중에 두어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당시에 있었던 한 사건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 내용은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시 어떤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들을 반역자로 여겨서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군대를 보내 몰살시킨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흘린 피가 제물과 같이 섞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건에 대해서 예수님께 이야기하는 그 이면을 보면 빌라도에 의해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생을 살면서 겪는 불행을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정죄하고, 자신은 죄짓지 않은 의인이라고 교만하게 행했던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욥기의 내용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욥22:4-5에 보면 큰 고난 가운데 있었던 욥을 찾아온 친구 엘리바스가 욥을 향해 이렇게 정죄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욥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생각은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냐고 질문합니다. 자신의 죄인 지, 아니면 그의 부모의 죄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요9:3) 유대인들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 속에 빠져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깨뜨리기 위해서 한 가지 사건을 더 언급하시면서 설명하십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9:4-5) 당시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치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유대인은 죄의 결과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와 사건에 대한 올바른 영적 해석’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통해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단순한 육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사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하고 죽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만 시한부 인생이 아닙니다. 죽을 날짜와 방법이 서로 다를 뿐 누구나 한 번은 육신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히9:27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심판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회개입니다. 빌라도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나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것이 참사가 아니라 가장 끔찍한 참사는 회개하지 않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때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영적인 실상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9:12에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분명히 영원을 보장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불안한 미래, 심판받을 미래 속에 빠져있는 불신 영혼들이 많습니다. 언제 재앙의 날이 임할지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행3:19에 솔로몬 행각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전 성경에는 새롭게 되는 날을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을 통해 모든 사람이 새롭고 유쾌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축복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유쾌한 삶을 회복시키는 생명 구원의 증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13:6-9)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진정한 회개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서 열매를 구했는데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자 포도원 지기에게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이때 포도원 지기가 주인에게 간청합니다. 자신이 잘 관리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금년 한 번만은 넘어가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 지기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열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포도원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길가와 집 주위에 심지 않고 기름진 포도원 땅에 심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주인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인의 기대치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무화과나무는 일차적으로 당시 유대인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열심히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자신의 의를 위해 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유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주기 원하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4천 지교회와 2만 현장전도제자’ 비전 가지고 믿음의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항상 생명 살리는 현장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교회 운동은 우리끼리 모여 말씀을 나누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안에 생명적 역동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불신 영혼이 주께 돌아오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역할을 감당하는 ‘제자 2만 명’을 바라보며 우리가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다른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우리 교회를 향한 기대치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만큼 복음의 참된 진리를 제대로 맛본 분들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을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을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론에 매여 본론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름휴가 기간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반기 사역을 하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믿음의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직분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모든 축복을 맛보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한 실직 당한 가장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갔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현관에 들어갔습니다. 눈앞에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이 보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한마디 했을 텐데 잔소리할 의욕도 없어서 그냥 아들이 하는 (게임의 화면)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게임에 져서 실패라는 의미의 ‘fail(페일)’이라는 단어가 화면에 떠오르는데도 아들 녀석은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 fail이 무슨 뜻인지 몰라?”라고 물어보자 아들이, “실패라는 뜻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하냐? 실패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라고 말하자, “에이 아빠도. 게임에서 실패란 ‘다시 한번 해 보라’는 뜻이잖아요! 새로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라고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아빠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실패란 너의 말처럼 끝이란 소리가 아니라 다시 한번 해보라는 뜻이구나!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이니 오히려 신나는 일이구나!’ 이 아빠는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힘을 냈다고 합니다. 다른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응답이 없는 삶을 사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수준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생각만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에 방향을 맞추면 나를 뛰어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출애굽 사건, 홍해 사건, 가나안 정복 사건, 기드온과 3백 용사 사건 등 성경은 인간의 생각 수준을 뛰어넘는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신의 수준에 제한받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와 사건을 보라는 것’입니다. 사55:8-9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아멘이십니까?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기대치를 다 충족시켜 드리며 하나님의 최고 기쁨이 되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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