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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누가 크냐! [눅9:46-50]
설교자정은주목사 2017-05-14 조회수522 50k 500k mp3 word 요약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9: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9: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서론] 지난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새롭게 대통령이 선출되면 국민들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특히 이번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은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 국민이 통합과 협치의 정부가 되길 바랍니다. 이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한 이유가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권위주의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리더십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지금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는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을 ‘Servant Leadership(서번트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일 때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섬김의 롤모델(Role model)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빌2:6-8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만한 섬김의 리더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라고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이들에게 영적으로 가장 큰 자가 누구인지 그 답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세상의 원리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무엇인지 답을 얻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응답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화목의 대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적인 큰 자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눅9:46)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본질적 목적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처음으로 십자가를 지실 것과 부활의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의 영광을 체험한 이후 다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직전(눅9:44)에 보면 이 부분이 나와 있습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우리는 이 내용이 얼마나 처절하고 힘든 과정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변화산의 영광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왕의 자리에 오르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니 분위기를 모르고 서로 누가 크냐고 변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언급하고 있는 ‘변론’이라는 말은 단순한 말다툼 정도가 아니라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비단 제자들의 경우만이 아니라 ‘내가 너보다 더 크다.’는 발상은 특히 가정과 교회를 공격하는 사단의 중요한 전략인 것입니다. 부부간의 문제도 잘 따지고 보면 ‘내가 너보다 낫다.’는 우월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가 너한테는 질 수 없다.’라는 이기적인 감정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서로 위에 군림하려는 생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주도권 싸움에 애꿎은 자녀들만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와 같은 제자들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증거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크냐,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는 관심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서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분열하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인 것을 우리가 실제로 많이 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서열의식이 사람들 마음속에 많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서열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나이를 따지고, 고향을 따지고, 촌수, 학번을 끊임없이 따지는 서열의식이 강합니다. 초기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이 선교하면서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가정방문을 할 때 방에 들어가면 아랫목, 윗목이 있고 윗자리, 아랫자리가 있는데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약 윗자리나 아랫목에 앉게 되면 그날 전도는 끝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 신참 선교사를 교육할 때 윗자리, 아랫자리를 구분하는 방법을 교육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갱신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9:47-4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누가 크냐”는 변론에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십니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세상 원리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서열의식을 완전히 깨뜨리기 위해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시각적인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당시 어린 아이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낮고 천하며 약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조차 섬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힘도, 지식도, 능력도 없는 어린 아이, 또 그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고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3:11-12에도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이 영적으로 큰 자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영혼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막10:45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생명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섬김이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섬김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순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 살리는 성경적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는 주제로 상반기 3.3.3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예수 생명을 전달해 주라는 것입니다. 3.3.3운동은 원래 30명의 전도 대상자를 선정해서 그들을 위해 하루 3번 기도하고, 그 가운데 3명을 교회로 초청해서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는 운동입니다. 오는 28일 주일이 D-day인데, 여러분 주변에 불신자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남을 가질 때 전도용품을 활용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접촉점을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지금 문화센터 2층 로비에서 전도용품 마켓을 열고 있으니 가셔서 보시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참된 섬김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큰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의 Oneness(원니스) 공동체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눅9:49) 당시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증거를 보였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이 자기들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행위를 금했다는 것입니다.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의 마음은 지금 예수님을 직접 따르는 자들만이 예수님의 참 제자이지, 자기들 외에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예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지금까지는 꾸중만 들었는데 예수님께 잘했다는 칭찬 한번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요한이 대표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제자들의 기대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눅9:50)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제자들의 편협된 마음과 생각의 틀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느 교회,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님께 속해 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단자들은 결코 용납할 수 없지만 그 외의 것은 관용,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의 대표로 나섰던 요한이 창피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요한의 별명이 ‘우레의 아들’입니다. 베드로 못지않은 다혈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거의 어부 출신인데 이들의 특징은 거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요한이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 후에 그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레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모했습니다. 요한이 쓴 요한일서, 이서, 삼서를 보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아멘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육신의 감정대로 살면 하나 됨을 이루기 힘듭니다. 제가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서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과의 교제, 성도 간의 교제가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하는 공동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완벽한 교통, 성도 간에도 걸림돌del 없이 유무상통(有無相通)할 정도로 본을 보인 초대교회의 교제가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가 있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마귀의 주특기가 무엇입니까? 그 이름의 뜻은 ‘이간자’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사단의 전략에 속지 마시고 영적 싸움을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우리에게 주어진 본당 건축과 4천 지교회 미션 실현의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지난 주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에 있는 터널에서 통학버스 화재가 나서 한국 국적의 유치원생 10명이 버스 안에서 타 죽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터널에서 추돌사고 후에 바로 화재가 발생해서 큰 피해가 났는데, 안타까운 것은 주변을 지나는 차량의 탑승자들이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아서 피해가 컸다는 것입니다. 충돌로 버스 출입문 쪽이 불길에 휩싸여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유치원생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유리창을 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유리창을 깨고 구조해야 했는데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불이 난 차 옆을 차들이 그냥 다 지나가고 있음을 여러분도 보셨을 것입니다. 중국 내에서도 주변인들이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다며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하는데, 영적으로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장에는 가만히 놔두면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영혼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모습이 중국 사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구원받고도 더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생명 살리는 전도자의 미션’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는 얼마나 많은 영혼을 살렸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이 가장 큰 성경적 섬김인 동시에 우리의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생명 살리는 일에 집중하며 단12:3의 말씀처럼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전도자로 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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