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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복된 인생! [눅6:20-26]
설교자정은주목사 2017-01-08 조회수834 50k 500k mp3 word 요약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습니다!”
[서론] 2017년 하나님께서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는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는 곳이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 만민이 기도하는 현장, Oneness 헌신의 현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건축하고 있는 본당도 이런 응답의 현장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지을 수 없는 특별한 곳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고 건축할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윗도 받지 못한 응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결심 중독’에서 벗어나 언약을 붙잡는 헌신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은 단순한 건물의 개념이 아닙니다. 현장을 회복시키는 발판이 되는 모이는 교회(Local), 흩어지는 교회(Para)의 응답을 누리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만방에서 예원교회로 훈련을 받기위해서 모여 들고, 구원을 얻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이 교회를 통해서 주께로 돌아오는 응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현장을 향해 있기에 우리가 ‘4천 지교회운동의 주역’으로 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담겨져 있는 모든 ‘불신앙의 철조망’을 다 걷어내야 합니다. 옛 것을 부수어 버리지 못하면, 새 것을 세울 수 없다는 불파불립(不破不立)의 영적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내게 있고, 내 가정 현장, 내 직장 현장, 내 사업 현장, 내 학업 현장에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없는 영적 배경을 여러분께서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신 것은 이것저것 재보지 말고 돈키호테처럼 믿음의 돌진을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여 2017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제2의 RUTC운동의 주역으로 당당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매 주일 누가복음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눅6장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생사고락을 함께 할 12제자를 선택하시고, 선택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영적 교훈을 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문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고 칭하셨다며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사도’라는 단어로 압축해 놓았습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이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보냄을 받기위해 제자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은혜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영적 Movement를 일으키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제목처럼 ‘복된 인생을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5장에 나와 있는 유명한 산상수훈의 말씀과 비슷한 형태인데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8가지 복’으로 시작하는데, 오늘 본문은 ‘4가지 복과 4가지 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된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추구해야할 것이 있고 버려야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본문 말씀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복된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한 답을 얻고 그 축복을 증거하는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본문에 기록된 복과 화를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영적 진리’를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2017년 한 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실 복을 모두 다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냥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증거를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창1:27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인격적 존재, 즉 하나님과 교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존귀한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창1: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하신일이 바로 인간에게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분명히 복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복에 겨웠던지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저질러 모든 축복을 상실하고 영원한 멸망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끝내버리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회복의 여정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창9:1에 보면 ‘창6장 문제’ 가운데 빠진 자들을 모두 홍수로 심판하신 후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창1:28에 하셨던 말씀을 반복해서 언약으로 주십니다. ‘창11장 문제’에 빠져있는 인간을 회복하시기 위해 창12:1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렘32:40-41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제가 성경에 나와 있는 복을 말씀드리려면 밤을 지새워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에게 복을 주기 원하시는지 우리가 한 구절만 함께 고백해봅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24-26)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여러분을 향해 있고 그렇게 향해 있는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이 언약을 확실히 붙잡고 2017년 여러분은 힘차게 영적 돈키호테가 되어 믿음의 도전을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 분도 빠짐없이 언약 성취의 주역으로 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과 화를 분별하는 지혜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6:20-22) 전부 읽진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복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눅6:24-26에 보면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가 화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 복과 화가 바뀐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정반대로 말씀하신 이유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가치관을 바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기준’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생의 화와 복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져야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영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데 하나님 나라가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마음밭이 좋은 땅, 옥토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린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정신없이 집어 먹습니다. 영적으로 주린 상태가 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편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하게 헐떡이다가 드디어 시냇물을 만나 그 물을 마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지 말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내 입맛대로 취사선택해서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을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17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말씀 앞에서는 온전한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영적으로 ‘일취월장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는 자와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장과 직결됩니다. 현장에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시급히 생명 줄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 줄을 붙잡는 자들이 주께 돌아올 때 우리에게 참 기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현장 회복의 과정 속에 각종 핍박과 멸시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전도자, 사명자, 헌신자에게는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화 있는 자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칭찬받는 자’가 화가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을 받는데 화를 입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육신적인 것으로 만족해하며 사는 그 자체가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받을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복음을 알지 못하게 되니 화가 임하게 되는 것이며 오히려 물질을 많이 가지는 것이, 지식이 많은 것이 복음을 아는 데 방해가 된다면 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은 육신적으로 풍요하므로 만족의 웃음을 웃고 있지만, 심판의 때가 되면 그 웃음이 애통의 울음으로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사도로 선택받은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세상 가치에 휩쓸려 서론적인 삶, 육신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본질’을 붙잡고 ‘본론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설교가 죠지 투루엣(George Truett)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것이 최고의 지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업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고 ‘믿음의 도전’을 하여 하나님 앞에 최고의 상급을 받는 ‘복된 인생’이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노케미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케미족은 영어 No와 화학물질을 의미하는 ‘Chemistry (케미스트리)’의 합성어로 일체의 화학제품의 사용을 거부하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신조어입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화학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천연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영적으로 노케미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백해무익한 불순물들, 지금까지 복음과는 상관없이 잘못 각인, 뿌리, 체질화된 것들을 다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복된 인생’의 축복을 누리며 영적 영향력을 현장에서 입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017년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나를 향해 있다는 ‘영적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걸음걸음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우리를 통해 현장으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는 현장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의 최고 기쁨, 최고 자랑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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