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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3부] 복음으로 자유한 인생! [롬1:18-25]
설교자정은주목사 2019-04-14 조회수48 500k mp3 word 요약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성도님은 매우 귀중한 사람입니다.’
[서론] 로마서 말씀은 한마디로 복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이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철학, 사상, 로마 황제의 복음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복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주어진 절대 복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복음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선포하면서 로마서의 서론을 마무리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완전 자유함을 주는 복음으로 서론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부터 본론이 시작되는데 서론의 분위기와는 아주 다릅니다. 본론의 첫 마디를 하나님의 진노라고 표현했습니다. 듣기에 별로 좋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두려움까지 들 수 있는 표현이지만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었는지, 왜 복음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던 해답은 자신이 그토록 핍박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특히 ‘어떤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주시는 선물’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사도 바울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줄 아십니까? 그 이유는 바울이 주장하는 이신칭의라는 구원의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은 율법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게 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입장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것이 확산하면 확산할수록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지고 율법으로 얽매여 놓고 자신들의 유익을 추구했던 삶들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창세기 3장의 자기 중심, 창세기 6장의 물질 중심, 11장의 세상 성공 중심의 옛 틀에 꽉 매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깨면 참 자유함을 얻게 되는데 오히려 그 틀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사대를 조직해서 바울을 끝까지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적 눈이 어두우면 이런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일단 이런 저주받은 옛 틀에서 벗어나 복음이 주는 참 자유함을 누리는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성찬 주일인데 ‘성찬의 참된 의미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을 누리며 증거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력으로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40일간의 기간은 한국교회가 금식과 특별기도회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절제하고 경건의 생활 하도록 합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어두워져 영원한 멸망 길로 가는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불신 영혼들을 건져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아무리 경건의 훈련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인해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 문제는 이미 다 십자가상에서 끝났습니다.’ ‘테텔레스타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그 영적 진리를 선포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영적 본질을 붙잡는 삶, 복음이 주는 자유함을 실제로 누리고 증거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진노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18-20) 사도 바울은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의인으로 칭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왜 인간에게 이런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복음 받기 이전의 삶의 특징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해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발생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 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인 된 상태를 가리켜 사도 바울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말하면 대부분 인간의 윤리, 도덕적인 잘못과 사회적 질서를 깨는 자범죄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원죄라고 합니다. 자범죄에 대해서는 세상 종교를 통해 서로 용서한다든지 또는 법의 심판을 통해 죗값을 치르는 등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원죄만큼은 그 어떤 종교적,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죄는 범죄 한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이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 중에서 구원받은 존재이며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을 보장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순간도 잊지 말고 참 자유함을 누리길 바랍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특징이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경건하지 않다’라는 말의 원어는 ‘하나님이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의도적으로 대적하는 행위를 가리켜 ‘경건하지 않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질적 죄, 원죄입니다. 특별히 본문 19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인간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봄이 와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계절을 맛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km 정도이며, 태양 표면의 온도는 6천도 정도 됩니다. 만약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모두 타 죽고 말고, 조금만 멀면 얼어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의 주위를 지구가 도는데 똑바로 된 상태가 아니라 23.5도 기울어져서 돌고 있습니다. 그렇게 회전하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구가 이렇게 23.5도 기울어져서 태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회전하는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과 우리를 향한 놀라운 사랑이 담긴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해도 믿어야 할 텐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은 이런 놀라운 창조의 모습을 보고서도 부인하고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섬기는 삶 속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 우리에게 영적 사실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 대신 그 자리에 우상을 놓고 섬기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영적 실체를 분명히 깨닫고 실제로 영적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상하고,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아무리 부를 소유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복음으로 참 자유함을 얻은 축복을 혼자만 가지고 있지 말고, 이것을 나누어주는 전도자의 삶’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심판으로부터의 자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1:24-25)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결국은 심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내버려 두사’라는 표현은 26절과 28절에도 반복되어 나옵니다. 내버려 둔다는 말은 신학적으로 유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시는 최고의 진노는 유기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자녀를 양육할 때 정말 말썽을 부리는 자식이 있습니다. 설득해도 안 듣고, 매로도 말 안 듣고, 눈물로 호소해도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면 결국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유를 준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극도의 분노를 표현한 말입니다.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징계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 신분이 요8:44의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입니다. 듣기 싫고 부인하고 싶어도 이것이 모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질적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 자체가 최고의 저주이며 심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심판에서 완전 자유함을 얻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저주와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롬1:24)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 탈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식을 진행하는데 ‘성찬의 참된 의미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참 자유함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1:26에 이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완전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 영적 진리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일심, 전심, 지속으로 전하는 삶을 통해 오직 여호와의 뜻만을 완전히 세워가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한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 두 가지를 깨닫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 하나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냐’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예수님께서 저렇게 무서운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까? 이것을 깨달아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도대체 나 같은 존재가 무엇이기에 날 위해 예수님이 생명까지 바치면서 구원해 주셨을까? 이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깨달았을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찬식을 진행할 것인데 오늘 ‘성찬식을 통해 이런 영적 진리를 올바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나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고 하나님 자녀 된 신분에 걸맞은 삶,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제자로서의 삶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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