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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2부] 하나님의 열심 [창12:1-4]
설교자김현길목사 2019-03-10 조회수132 500k mp3 word 요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옛 틀을 깨고 새 틀 인생을 삽시다.’
[서론] 담임목사님께서는 이번 한 주간 미국 LA에서 RU 개강 특강 및 중직자 훈련, 팀사역을 인도하실 예정입니다. 남은 사역 일정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라는 원단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실천방안으로 ‘4천 말씀운동의 주역’이 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성령 인도를 가장 확실하게 받는 최고의 방법은 강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가는 것과 멈추는 것입니다. ‘GO와 STOP’입니다. 성령이 ‘GO’하면 가는 것이고, 성령이 ‘STOP’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무조건 가면 그것은 인도가 아니라 고집입니다. 강단이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고, 강단이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강단이 4천 말씀운동의 주역이 되라고 하면 우리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고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할 때 메시지가 부족하면 훈련받으면 되는 것이고, 열정이 없다고 하면 무릎 꿇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뭇거리거나 어정쩡한 상태에 있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처럼 즉시로 순종하는 영적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렘넌트들도‘저도 4천 말씀운동의 주역으로 쓰임 받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1,788개의 말씀 운동의 현장이 있고, 662명이 한 곳 이상 말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4천 말씀운동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 내 생각, 내 경험이 첨가되면 안 됩니다. 말씀 앞에 내 생각이 보인다면 꺾어야 합니다. 결박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싸워야 내 옛 틀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열심이 있습니다.’ ‘나를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절대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강한 의지로 우리를 훈련하실 겁니다. 아브라함을 훈련시키신 하나님이 우리도 훈련시켜서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영향 받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는 절대 제자로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한 의지 앞에 순종하는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까요. 여기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일방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생존이 아닌 사명에 이끌려 사는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하나님의 열심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사도행전 7:2-4) 오늘 읽은 말씀은 스데반의 순교 직전에 했던 설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 즉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일방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아브라함은 무명의 사람입니다. 그는 문벌, 학력, 능력 어느 것 하나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했습니까? 학자들 대부분의 견해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열두 가지 우상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우상 숭배는 저주와 재앙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가문은 망해야 하고,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왜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시고 축복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키는 창3:15절입니다. 이것을 ‘원시 복음, 혹은 원복음’이라고 합니다. 창3:15의 주인공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올 것을 처음으로 예언하기 때문에 원시 복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여자의 후손이 이 땅에 오셔야 인간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있고, 죄를 해결 받아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사단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이 누구를 통해 온다는 것입니까? 창세기 5장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산 자의 어머니)를 통해서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그리고 노아의 세 명의 아들 중에 하나님은 셈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셈의 9대손입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등장시키기 전에 성경은 먼저, ‘아브라함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11장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담의 20대손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창3:15의 주인공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을 족보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여자의 후손이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가?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보통은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한다면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정상적인 경로입니다.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을 때를 대략 60세 정도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평평하고 비옥한 지대라서 거리상으로는 909km지만 이동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 12장의 말씀의 장소는 가나안 땅이 아닌 하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중요한 것은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4절에 75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60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영광의 하나님을 만났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는 강한 말씀을 받았지만 지금 아브라함의 위치는 가나안 땅이 아닌 하란입니다. 하란은 가나안에서 480km 떨어져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국경지대도 아닌 메소포타미아지역입니다. 아브람은 현재 하란에서 15년 동안 거주하고 있습니다. 15년은 잠깐이 아닌 정착을 의미합니다. 현재 하란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얼핏 보면 아브람이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반쪽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과정을 자세히 보면 그의 큰 약점 중의 하나가 머뭇거림입니다. 결단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옛 틀입니다.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은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어 목축업 하기에는 최고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모든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했을 때 ‘믿음으로 결단했지만, 결국 믿음의 뿌리가 없었기에 험난한 길과 미지의 땅에 대한 두려움, 이방 지역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걸음을 머뭇거리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세월이 15년입니다. 머뭇거린 시간, 말씀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기간이 15년입니다.

15년 동안 하란에서 어떤 창조적인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열매도 이루지 못한 세월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무익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말씀도 사라져 버린 15년, 사명도 사라진 15년, 하나님과의 소통도 사라져 버린 15년, 하나님의 음성이 사라져 버린 15년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아브라함 인생의 영적 암흑기였다는 것입니다.’ 사명이 있는데 본능에 매여 있는 아브라함, 창3:15의 성취자 임에도 불구하고 하란에서 15년 동안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허밍버드’라는 새가 있습니다. 윙윙거린다는 뜻에서 허밍(humming)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 같습니다. 한국말로는 ‘벌새’입니다. 벌같이 작은 새라는 말입니다. 길이가 6센티 정도 되는데, 1초에 50~70회 정신없이 날갯짓한다고 합니다. 고속 카메라로 찍어도 잘 잡아내지 못할 속도입니다. 그렇게 죽으라고 날갯짓을 하다가 4년 만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 새의 모습이 오늘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저는 요즘 사단에 대해 분노합니다. 많은 성도들을 보면, 세상에서 특별한 죄를 짓고 타락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직 성경, 오직 전도, 오직 기도로 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정쩡한 상태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음도 아니고, 말씀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안에 있습니다. 왜 영적 욕심이 없을까? 왜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욕심이 없을까? 왜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성장이 없이 신앙이 정체되었을까? ‘신앙은 성장이 아니면 쇠퇴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중간은 묘기입니다. 자전거는 가든지 아니면 넘어집니다. 자전거가 서 있으면 그것은 묘기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15년 동안 어정쩡한 상태, 신앙이 멈춘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도 모르는 사이에 체질이 창 3장 나 중심, 창 6장 물질 중심으로 각인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셈족입니다. 그의 직업은 목축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은 함족이 사는 곳입니다. 새로운 환경입니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 자체가 다릅니다.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의 생업은 목축업이 아니라 농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지형은 동서의 길이가 96km로 짧고, 남북의 길이가 560km로 무척 길게 되어 있습니다. 동서로 큰 산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쪽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서쪽은 지중해에서 습기를 동반한 비구름이 불어와서 농사짓기 좋은 땅입니다. 이곳에 대부분의 가나안 원주민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와서 거처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축업 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과 풀입니다. 물과 풀이 있는 곳은 서쪽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벌써 수백 년 동안 원주민들이 정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맞는데 창3장의 나 중심의 생각이 그의 몸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말씀 잡고 왔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가 너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가라고 하는데 몸은 멈춰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보이는 것이 하란의 아름다운 목초지와 강줄기입니다. 지금 사는 하란은 아브라함이 보기에는 천국입니다. 물이 있고, 풀이 있어서 목축업 하기에는 최고의 땅입니다.

‘사명이 있는데 생존과 환경이 그를 묶어 버렸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사명이 있는데 사명자의 삶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그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15년 동안 어정쩡한 상태, 머뭇거리는 상태에 있었던 아브라함을 향해, 하나님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열심은 창3:15을 성취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여자의 후손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창3:15을 가나안 땅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고난입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창11:31-32) 이 땅의 최고의 고난은 죽음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올 때, 주체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를 데리고 갑니다. 아브라함이 믿었고 의지했던 인생의 주체인 아버지를 데리고 가십니다. 고난이 아브라함을 홀로 있게 만들었고, 외롭게 만들었고, 결국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는 인생 최고의 고난이요 아픔입니다.

그런데 아픔과 고난은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세상에서 복음으로 인도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열심을 이루시는 방법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합니다. 그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는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들리자마자 굳어져 버린 옛 틀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창 3장의 생각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창 6장의 물질 중심의 생각이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12:4) 승승장구했던 예루살렘 교회에 큰 고난이 찾아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습니다. 전 성도들이 흩어집니다. 어떤 면에서는 교회의 가장 큰 위기요, 고난입니다. 그런데 그 위기 속에서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탄생한 교회가 안디옥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고난은 우리 속에 있는 고질적인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결박이 풀리게 하는 강한 무기입니다. 옛 틀에서 새 틀로 옮기는데 사용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고난이 올 때 자기 자신을 봐야 합니다. 나의 영적 상태와 하나님과의 소통을 점검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의 반복적인 고난과 문제는 결국 파괴의 결과가 옵니다. 그래서 정신이 파괴되고, 마음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고 나중에는 주변을 파괴해 버립니다. 그러나 복음 가진 자의 고난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 속에는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결단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어정쩡한 상태에 있지 말고, 머뭇거리는 상태에 있지 말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 복음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라는 뜻은 ‘말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기도와 훈련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 3장의 뿌리 속에 있기 때문에 말씀이 싫고, 기도가 싫고, 전도가 싫고, 헌신을 싫어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부담되지만 영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옛 틀을 깨는 나와의 영적 싸움입니다. ‘영적으로 싸우지 않으면 우리의 어정쩡한 신앙생활과 머뭇거리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 속에 포함된 우리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4천 말씀운동의 주인공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 시대 현장에 죽어가는 많은 불신 영혼을 살리는 절대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복의 근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2)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창3:15의 언약을 성취하는 새로운 미션을 향해 가나안 땅으로 출발하라고 명령하시면서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되어 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근원이라는 말은 시조, 혹은 출발이라는 의미입니다. ‘너는 복의 시조(출발)가 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국가마다, 개인마다, 사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란 무엇입니까? 특별히 창세기 12장에서 말하는 복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정확한 예언적 의미는, ‘너는 장차 그리스도의 시조가 될 것이다, 너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첫 조상이 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람과 사라를 통해 이삭을,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장자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시고, 야곱의 12명의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민족을 만드시고, 야곱의 12명의 아들 중 유다를 통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창 3장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열심이요 하나님의 강한 의지’입니다. 이 일을 이루는 일에 ‘아브라함을 첫 조상’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은 그리스도의 족보를 설명하고 있는데, 첫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아브라함이란 이름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룰 것이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오시기 때문에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실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강한 의지요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내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합니다.

3절에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그리스도의 조상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고, 아브람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고, 거부하면 영원한 저주와 형벌과 심판을 받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 속에서 우리 가정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첫 조상, 첫 시조, 첫 출발이 되었듯이, 우리의 가정도 복음의 가정이 되어야 하고, 언약 전달자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일에 여러분이 첫 조상, 첫 시조, 첫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영적 자세가 개척자의 자세’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개척자입니다. 후대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달하는 영적 개척자입니다. 그리고 개척자는 정신과 자세도 중요하지만, 땅을 개간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가정과 가문과 지역의 개척자에게 필요한 도구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평상시 준비해서 4천 말씀운동의 주역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했는데 핀란드가 세계 1위를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까 핀란드는 1980년대까지 평균적인 교육 수준에 머무르던 나라였습니다. 교육을 위해서 큰 비용을 지출하지도 않습니다. 1인당 평균 교육비를 보면 미국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핀란드의 교육이 최고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기자가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교사 때문이고, 둘째도 교사 때문이고, 셋째도 역시 교사 때문입니다.” 핀란드는 교사에 대한 철저한 선별과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육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니 모든 것이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바뀌면 자녀가 변한다.’ 이런 말은 세상의 교육학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 정확하게 말합니다. ‘엄마가 복음적이면 자녀도 복음적이다.’ 교회에서도 엄마가 있습니다. 그것이 중직자입니다. 중직자는 교회 평신도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바뀌면 자녀는 서서히 변화됩니다. 예원교회는 1,311명의 중직자들이 있습니다. 예원교회의 엄청난 힘이요 영적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중직자들이 한 곳의 말씀 운동만 해도 벌써 1,311개의 말씀 운동의 현장이 회복되고, 연약하고 나약한 성도들 1,311명의 믿음이 회복되고 교회에 정착됩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오늘도 예원교회를 통해 4천 말씀운동이 회복되고 죽어가는 많은 현장에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대적 미션에 주인공 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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