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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3부] 가상칠언(架上七言)! [요19:28-30]
설교자정은주목사 2019-02-10 조회수167 500k mp3 word 요약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성도님은 현장변화의 주역입니다.’
[서론] 지난 설 명절 기간에 ‘가문복음화’라는 언약을 붙잡고 믿음의 도전을 하셨습니까? 제가 금요기도회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세 가지 중 한 가지 반응을 접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복음의 문이 열린 경우, 두 번째 완전히 막힌 상태 그대로인 경우, 세 번째 소망의 빛이 보인 경우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었던지 간에 영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적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언약의 눈,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문복음화에 대한 분명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직은 철옹성처럼 굳게 닫힌 불신가문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언약 잡고 기도하면서 믿음의 무한도전하면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반드시 응답 되게 되어있습니다. 사단의 견고한 진이 무너지는 날이 옵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10:4에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영적 싸움을 싸우면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강력한 힘,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은 언약적 기도로부터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붙잡고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믿음의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Never give up!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실현하시고 완성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제목이 가상칠언(架上七言)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하신 7가지 말씀입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가상칠언은 4복음서에 분산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3가지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일 살펴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내가 목마르다”“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입니다.

‘가상칠언은 아주 간결한 문장으로 되어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담긴 영적 메시지를 언약으로 붙잡고 믿음의 도전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벧전2:21에도 보면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아가며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는 데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용서와 구원의 삶
가상칠언 가운데 첫 번째 말씀은 눅23:3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일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용서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린 상상을 초월한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영적 무지 속에 빠져있는 영혼들이 여러분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도 과거에는 예수님을 못 박은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용서의 십자가를 통해 이렇게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용서를 통해 소망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이런 용서의 영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이런 용서의 삶은 내 힘과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아버지를 부르면서 용서의 기도를 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의 기도 내용입니다. “하나님,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마음과 어떤 상황도 참을 수 있는 인내를 주옵소서. 하지만 제게 힘과 지혜는 주지 마옵소서. 힘을 주시면 남편을 때려서 죽일 것 같고, 지혜를 주시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것 같거든요.” 그만큼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용서를 실현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의 7 중직자 중 한 사람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는데, 그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한 기도가 있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은 평상시 기도 가운데 예수님과 깊은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각인, 뿌리, 체질화되어 있었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입니다.’ 스데반이 보여준 이런 용서의 기도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초대교회는 핍박 가운데서도 흩어진 자들을 통해 복음이 확산하는 역사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스데반의 순교는 시대적 전도자 바울이 등장하게 되는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 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이었고,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지키며 증인으로 그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핍박 자가 돌이킨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스데반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교회는 결코 바울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스데반이 보여준 용서의 기도 열매가 사도 바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복음의 문이 열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 생각과 현장의 모든 것을 전부 기도로 연결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상칠언의 두 번째 말씀은 눅23:43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좌, 우편에 두 명의 흉악한 강도가 같이 못 박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 중 하나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편에 있던 강도는 이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자신들은 범죄를 했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지만,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임종 전까지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 직전까지 생명을 구원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런 생명 구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2019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인 ‘4천 말씀운동과 237나라 복음화’라는 언약적 비전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 구원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일심, 전심, 지속할 때 하나님의 스케일을 체험하고 인생작품을 만드는 응답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무한도전과 응답을 체험하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명완성의 삶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 번째 하신 말씀은 지난 주일 살펴본 것처럼 제자 요한에게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우리는 이런 가정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이 복음 안에서 원니스가 될 때 영적 가족, 공동체인 교회도 동반 성장하는 증거’를 보게 됩니다.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을 충실히 감당했는데 그 바탕에는 예수님과의 영적 소통이었습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신을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내게 주어진 사명, 내게 주어진 직분을 의무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감당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강단을 통해 날마다 새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 문제와 사건 앞에 흔들리지 않고 일심, 전심,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십자가상에서 하신 네 번째 말씀부터 일곱 번째 말씀까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성하는 내용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 번째 말씀은 마27:46에 나와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인간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하나님과 단절되는 아픔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오늘 본문에 나온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입니다. 온몸의 피와 물이 다 빠져나가기 때문에 목이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요19:28-29)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시편의 말씀입니다. 시22:15을 보면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시69:21에는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말씀성취와 사명완성에만 집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0절에 드디어 이런 사명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예수님께서 대신 지셨던 ‘모든 인류의 죄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완벽한 승리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더는 미해결과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은 눅23:46에 나오는데 이런 승리 선언 이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고백입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은 장차 임할 부활의 영광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장차 부활시키실 것에 대한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빌2:9~11에 보면 이런 십자가 사명을 완성하신 예수님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명완성의 축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딤후4:7-8에 사명완성의 축복이 어떠한지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 다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장차 얻을 면류관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무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상급을 얻겠다는 푯대 의식을 가지고 믿음의 무한도전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부르심의 상을 위해 믿음의 전력 질주를 한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2019년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삶의 원리를 따라 사도 바울처럼 영생의 면류관을 받는 사명완성의 삶을 다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복음 전도자로 유명한 D. L 무디(Dwight Lyman Moody) 목사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닌 구두 수선공이었고 말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있는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 가장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인생행로에서 네 가지 큰 어려움을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복음은 내게서 죽음의 공포를 없애주었습니다. 두 번째 복음은 죄의 멍에를 풀어주었습니다. 세 번째 복음은 심판의 두려움을 제거해주었습니다. 네 번째 복음은 나를 죄의 억압에서 해방하고 자유의 영을 주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디 목사의 이런 고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신 복음의 핵심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복음이 주는 참 기쁨이 있습니까? 정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고, 활력이 넘치게 합니다.’ 내가 기쁘면 주변이 변화됩니다. ‘살아있는 성도, 살아있는 교회는 기쁨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용서와 구원의 삶, 사명완성의 삶’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따라가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현장변화의 주역’으로 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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